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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 야단치기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 야단치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야단칠 일이 생기게 된다. 이럴 때 무조건 소리치며 혼내면 아이의 마음만 다치기 쉽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림은 더 크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지혜를 모으면 아이를 울리지 않고도 엄마가 원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기를 수 있다.
 
 
 
 
 
 
내 아이 그릇된 버릇은 부드러운 말로 고치자
큰아이가 첫돌 무렵 윗집 아이는 날마다 우리 집으로 놀러왔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좋다는 표현으로 항상 그 아이를 꼬집었다. 아이 혼자 있으면 웃을 일만 가득한데 그걸 야단쳐야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어쩌랴. 소심한 내가 그 아이에겐 우리 집에 놀러오지 말라 말할 수도 없고 그릇된 행동을 하는 아이를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내 아이를 야단쳤다. “안 돼. 꼬집으면 아파.” 아이를 똑같이 꼬집고는 아이 눈을 바로 보며 낮은 말로 타일렀다. “아프지? 네가 꼬집으면 예리도 이렇게 아파.” 꼬집기 전에 아이 단속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인식할 때까지 부드러운 음성과 눈빛으로 여러 번 가르쳤다. 아이라서 그렇게 했다. 이해되지 않아 그런 행동을 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데 소리 질러 야단치면 위축되어 영문 모른 채 계속 같은 그릇된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알아들을 때까지 하고 또 했다. 얼마가 지나자 꼬집지 않았다.
유난히 한 숟가락만 집착하는 다섯 살 아이에게서 숟가락을 모질게 뺏은 엄마가 있었다. 살아가며 수없이 많이 자신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데 이렇게 커서는 상처만 받을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쌓을 필요가 없다. 아이는 자기만의 감수성으로 무슨 문양을 좋아하고 색깔과 촉감을 즐기게 마련이다. 그러니 다 누리게 두어라. 아이가 크면 차차 달라진다. 어린 그 모습대로 그대로 이어 크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것을 보며 날마다 크고 변하는 것이 아이다. 엄마가 나서서 그 개성을 똑 부러뜨릴 이유는 없다.
정 걱정이 되면 길을 놓아라. 계절이 바뀔 때 가족 모두 새 숟가락으로 교체하면 아이도 자연 따라 한다. 누누이 말한 대로 아이는 ‘따라쟁이’다. 어른들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을 즐긴다. 그도 싫어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숟가락은 그대로 쥐고 누리게 하되 선물로 새 숟가락을 하나 주겠다며 숟가락 가게에 가서 아이보고 한 개 고르게 하면 좋다. “네 숟가락도 이제 가족이 생겼네” 하며 아이 수준에 맞춰 맞장구를 쳐줘도 좋다. 어른은 아이보다 오래 살았다. 그러니 아이와 동갑내기처럼 굴지 말고 지혜를 짜내라. 아이를 울리지 않으면서도 다 하게 하면서 엄마가 원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기르는 법이 얼마든지 있다.
아이를 우습게 보지 마라. 아이도 머리를 쓴다. 우리 작은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학교 가기를 꺼리는 아이였다. 학교 가는 것, 책가방 싸기, 숙제는 문제도 아니었던 큰아이와는 달리 작은아이는 어느 것 하나도 혼자 못하고 부적응아의 모습을 나타냈다. 다른 아이인 걸 어떡하나. 비교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학교에 데려가 보면 책가방이 비어 있었다. ‘책 안 넣어 가면 학교에서 집으로 그냥 보내겠지’ 하는 좁은 제 소견이었다. 그래도 집에 가서 책 넣어 다시 학교 가야 하자 아이는 다른 묘안을 냈다. 이젠 책가방이 무거워 학교 못 다니겠다는 하소연을 했다. 그도 그대로 인정해 학교까지 책가방을 들어다 주었다. 아이는 차차 이유를 댈 게 없는 데다 눈은 있어 다른 키 작은 아이들도 제 가방 스스로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며 혼자 학교에 잘 다니게 되었다. 딴에는 그 작은 머리로 학교 안 갈 꾀를 잔뜩 내본 것이다. 딴에는 있는 꾀를 다 내는 것인데, 다 엄마 손 안에 있다. 아이라고 인정하면 행동 하나하나가 차라리 귀엽고 우습다. 그렇게 꾀를 내며 머리가 비상해지는 것이다.

남의 아이의 그릇된 버릇도 타이른다
길 나서면 눈에 차지 않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남의 아이를 뭐 어쩌겠나 하고 ‘어이구’ 하며 지나칠 것인가 참견할 것인가 고민이 많다. 하지만 덥석 달려들어 참견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내 아이의 조화로운 생활을 위해, 그 아이의 성장을 위해, 나의 평화를 위해 한마디 해야만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무섭게 뛰어 들어오는 아이가 있었다. 때론 내 배에 그 머리를 들이박기도 했다. 내 두 손으로 아이의 양팔을 잡고 뒷걸음치게 밀고 나왔다. “어이, 잘생긴 총각. 내리고 타야지.”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내게 저항하지만 나를 올려다보지 않는다. 무섭고 무안해 그럴 것이다. 아이 얼굴에 눈을 맞추고 “자, 내리면 타자” 하고 나직이 속삭이면 힘을 빼지는 않지만 거의 내 뜻대로 따른다. 곁에 있는 엄마도 내게 불쾌한 표정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워낙 단호해서 그러기보다는 이 행동이 그릇된 것임을 인정하기에 그렇다. 또 잘생겼다고 칭찬을 들었으니 거기에 부응하려는 의지도 숨어 있다. 번거롭겠지만 누구나 어디서나 우리의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식당에서 날뛰는 아이, 나서서 타일렀다. 일단 단순하게 시끄럽다고 주의를 주면 엄마들이 보통은 신경 쓴다. 똘똘한 아이들을 불러다가 조용하라며 과제를 주기도 했다. 입 다물고 조용히 다니며 메뉴판에 있는 이 집 음식 가짓수 알아오기, 값 다 더하기 같은 문제다. 내가 갖고 있는 작은 수첩, 펜을 상으로 주었다. 재미가 있으면 아이가 밖으로 돌지 않는 것을 부모에게 알리는 수밖에 없다.
조금 어린 아이 엄마에게는 정보를 주어 조용히 시킨다. ‘엄마가 다 먹여주면 아이는 할 일이 없어 소란하다. 나이에 맞는 적당한 지혜만 있으면 아이와의 외식이 힘들지 않다. 우리가 갈비를 먹으면 뼈를 한 개 미리 구워 물에 헹구어 아이에게 주었다. 식당을 나올 때까지 그것 빠느라 아이가 조용했다. 횟집이라면 생선살을 조금 삶아 달라 하여 아이에게 안기면 끄떡없다. 단, 국수처럼 아이 혼자 먹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릇에 따로 담아 아이 앞에 놓아주면 아이가 혼자 손가락으로 집어 먹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도 힘들여 제 손으로 제 식사를 하고 나온다. 소근육 운동이라 머리도 좋아진다…’. 그런 정보를 아이 엄마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목욕탕에서 시끄러운 아이는 야단맞아 마땅하다. 여섯 살 아이가 계속 찡찡거리기에 엄한 표정으로 “말할 줄 아는 데 왜 그러니?” 하고 꾸짖었다. 엄마도 아이도 움찔하더니 아이가 조용해졌다. 아이도 안다. 곱게 말해야 하는 것을. 그런데 엄마가 다 받아주니 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큰다. 본인이 더 고달프다. 그 소리를 내려면 그 아이 마음이 어떻겠나. 행복하지 않다. 그 아이의 행복을 위해 멈추게 해야만 한다. 비행기나 미술관에서 소란한 아이를 만나면 피할 길도 없이 고스란히 그 곤욕을 겪어야 한다. 아이를 보고 “쉿” 하며 주의를 주었다. 엄마에게 조용히 시키라는 경고다. 아이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엄마이더라도 몇 번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노력하게 된다. 담당자에게 부탁해도 좋다. 우리 아이들과 어디에 갈 때는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을 알린 다음 ‘속삭이는 놀이’를 즐겼다. 비행기, 미술관에서 내내 속닥속닥 놀았다.

아이 기르는 엄마들은 아이 상태를 읽어야 한다.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잘 들여다보면 답이 거기에 있다. 더 나은 세상에 살길 바란다면 지그시 눈감아 사랑으로 돌보라. 아이들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욕구가 있다. 그냥 두어두되 정 아니다 싶은 것은 다가가 거들어라. 사랑하는 마음과 그들의 행복을 비는 태도로 대한다면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


‘엄마학교’ 서형숙 선생은…
행복하게 두 아이를 기른 서형숙 선생은 달콤한 육아, 행복한 삶을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에 작년 북촌에 엄마학교를 열었다. 『거꾸로 사는 엄마』(리즈앤북), 『엄마학교』(큰솔), 『엄마라는 행복한 직업』(21세기북스) 세 권의 책을 출간하였고, 현재 서울시 교육지원사업 자문위원, 교육부 유아 교재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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